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그를 만났을 때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올랐다.
황리건 공동창업자(CSO, 사진)가 원티드에 합류하기 전에 해온 업무는 주로 기술과 경험에 관련된 것이었다. 15여년 경력의 팔할이 그랬다. 플래시(flash), 사용자 경험(UX) 개발, 그리고 에반젤리스트(기술전도사)까지. 그는 조직의 ‘몸짓’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기자 시절 사물인터넷(IoT)을 취재한다는 이유로 만났던 그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글로벌 거대 IT 기업 소속이었다. 2014년. 그는 안정된 환경을 내려놓고 나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며칠 전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에릭슈미트 알파벳 회장(구글 전 CEO)이 한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물론 나이가 들면 안전한 직장에서 나와 창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행복을 추구해야죠. 지금이 행복하다면 그냥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조직과 상황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끌어간다면 그만 둬야죠.” – 에릭슈미트 알파벳 회장
작년 말. 그는 MS를 나와 모바일 기반의 헤드헌팅 플랫폼 ‘원티드’ 창업에 합류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창업을 꿈꿨다”고 했다. 무엇이 황리건이라는 UX 개발자를 스타트업까지 이끌었을까. 10월 29일 구글캠퍼스 서울 원티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급했죠.”
황리건 공동창업자에게 큰 조직을 나온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원래 웹사이트 배너, 웹게임 등에 들어가는 플래시를 개발했던 개발자였다.
“제 나이가 이제 30대 중반인데 경력은 15년 정도 됐습니다. 2001년, 대학생 때 10명 정도 되는 벤처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이듬 해 NHN(현 네이버)에서 병역특례 과정을 진행했죠. 이 시기 제가 주로 해온 개발은 플래시였습니다. 2007년쯤 되면 플래시의 전성기가 시작되는데요. 그래서 당시 MS에서 많은 숫자의 플래시 전문가를 영입했는데요. 저도 이때 합류해서 에반젤리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황 CSO가 담당한 영역은 UX였다. 당시 MS가 실버라이트라는 기술을 내세우며 어도비의 플래시를 대체하고자 했는데, 이 모든 영역이 UX에 포괄되는 개념이었다. 그는 국내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에게 관련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사용하도록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PC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리고 포털의 시대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끝은 빠르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황 CSO 역시 그러한 위기감을 느꼈다.
“2009년부터는 흐름이 PC에서 모바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저는 뒤처진 것 같았죠. 개발자들은 안드로이드나 iOS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죠. 그 때부터 창업을 결심한 전 직장 동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 척박했는데요. 그 친구들이 조금씩 발판을 만들어서 성공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결심을 하게 됐죠.”
회사를 나왔다. 누구든 가고 싶어하던 글로벌 IT 기업에 사표를 낸 것이다.
황 CSO는 ‘넥스트 빅띵(Next BigThing)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관심 분야였던 스마트워치, 밴드와 같은 웨어러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모바일 헤드헌팅 서비스인 원티드 창업에 합류했다. 응?
“저는 스마트워치, 밴드가 넥스트 빅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되게 천천히 오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렇지만 당장 먹고 살 게 필요했습니다(웃음).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초기에 모인 멤버들과 끊임없는 토론, 논쟁을 했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게 있겠지만, 잠시 내려놓고 바로 지금 들어오는 파도를 잡자고 했죠. 그래서 원티드를 만들게 됐습니다.”
원티드는 모바일 헤드헌팅 서비스로 황 CSO를 포함 네 명이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헤드헌팅이란 일반적으로 경력직 직원의 이직을 중계하는 업무를 의미한다. 주로 전문 영역의 헤드헌터가 있으며, 이직 성사시에는 수수료(일시불, 혹은 월급의 일부)를 받는 구조로 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티드는 지인 추천을 통해 채용을 성공하면 소정의 사례비를 제공하는 구조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잠시 광고~! 원티드에서는 오는 11월 5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제 2회 스타트업 리크루팅 데이를 진행합니다. 스타트업 입사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하네요. 참가신청은 온오프믹스(http://onoffmix.com/event/56416)에서 받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모바일에서 이직활동을 할 거라면, PC 인터넷 기반의 헤드헌팅 플랫폼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것. 황 CSO는 ‘소셜미디어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모바일과 PC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셜네트워크의 생활화라고 생각합니다. 쭉 지켜보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구인구직을 하는 경우가 참 많더군요. 헤드헌터 없이도 활발한 구인구직이 일어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특정 플랫폼만 없었을 뿐이었죠. 그래서 이를 제품으로 잘 만들면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초기에 엔젤투자자 등을 만날 때만 하더라도 ‘옛날에 (이런 서비스) 하려던 팀들이 2~3곳 된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죠.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셜과 모바일이 무르익은 상황에 맞춰 원티드가 나온 것이죠.”
원티드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린스타트업(Lean Startup)’에 기반해 개발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구글폼과 페이스북 페이지만으로 헤드헌팅 업무를 했던 것. 황 CSO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별히 린스타트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뒤돌아보니 그렇게 일을 했던 것 같아요(웃음). 스파크랩스의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에도 페이스북 페이지와 구글폼으로 서비스를 운영해 놀라움(?)을 샀죠. 그런데, 추천이 들어오더군요.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시장에서 통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빠른 속도로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안드로이드앱도 개발했습니다. 오는 12월에는 iOS 앱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원티드를 기반으로 이직 채용을 하고 있는 파트너사만 해도 80곳이 넘는다. 처음 한 두곳과 제휴할 때는 많은 힘이 들었으나, 이제는 원티드 플랫폼에 올라타고 싶다는 회사들이 등장하는 상황. 짧은 시간에 플랫폼이 됐다는 의미다.
황 CSO는 요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과거 큰 조직에서는 하나의 업무만을 완벽히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티드의 원대한 비전 아래 서비스 UX부터 안드로이드앱마저 손수 개발/기획하고 있다. 그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을 계획(Plan)했고 모바일의 미래를 봤으며(See), 머리 속에 있는 꿈을 실천(Do)했다. 그렇게 그는 꽃이 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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